재개발·재건축 이주비와 이사비, 헷갈리면 손해 봅니다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면 조합원들에게 가장 먼저 와닿는 변화가 '이주'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꼭 등장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이주비와 이사비입니다. 발음도 비슷하고 둘 다 조합에서 나오는 돈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자금입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곤란해지는 조합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주비 = 내가 갚아야 하는 대출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오해는 "이주비는 조합이 주는 돈"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주비의 실체는 은행이나 저축은행 같은 금융기관이 조합원 개인에게 내주는 대출입니다.
조합이 하는 역할은 시공사의 보증을 끼고 금융기관과 단체 대출 협약을 맺어주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돈을 빌리는 사람, 즉 차주는 어디까지나 조합원 본인입니다. 조합이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담보 역시 조합원 소유의 부동산입니다. 이주비가 실제로 지급되는 순간 그 물건에 근저당권이 설정됩니다. 아직 철거 전이라 건물이 남아있는 단계라서 토지와 건물 양쪽 모두 담보로 잡힙니다.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이주비 한도는 감정평가액을 출발점으로 계산합니다. 감정평가액에 LTV 비율을 곱한 금액이 기본 이주비 한도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추가로 빼야 진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나옵니다.
- 기존에 그 물건에 걸려있던 담보대출
- 전세를 끼고 있다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
예를 들어 서류상 한도가 3억 원이라도, 기존 대출이 1억 원 있고 전세보증금 1억 5천만 원을 물어줘야 하는 물건이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5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감정평가액이 낮게 나온 물건일수록 이 격차가 커지고, 심하면 이주 자금 자체가 부족해서 정해진 기한 안에 이주를 못 하는 상황까지 생깁니다.
무이자 이주비도 사실은 공짜가 아닙니다
이주비는 무이자와 유이자로 나뉩니다. 무이자 이주비는 시공사가 이자를 대신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통장에서 이자가 빠져나가지 않으니 정말 이자를 안 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시공사가 대납한 이자는 결국 공사비 항목으로 들어갑니다. 공사비는 총사업비의 일부이고, 총사업비가 커지면 비례율 계산에서 그만큼 차감되는 구조입니다. 비례율이 내려가면 조합원 개개인의 권리가액이 줄고, 권리가액이 줄면 결국 분담금이 늘어납니다.
정리하면 무이자 이주비의 이자는 특정 개인의 통장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가 분담금 형태로 나눠 부담하게 됩니다. 이 구조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이주비를 적게 쓴 조합원도 다른 사람들이 쓴 이자를 같은 비율로 함께 부담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자금 여유가 있어서 이주비를 아예 안 받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빚지기 싫어서 안 받는다"는 판단이 꼭 유리한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옵니다. 물론 무조건 한도까지 다 받으라는 뜻은 아니니, 본인의 자금 계획과 함께 따져볼 문제입니다.
상환은 언제, 어떻게
이주비 상환은 입주 시점에 한꺼번에 처리됩니다. 조합원이 분양대금 잔금을 납부할 때 이주비 원금도 함께 정리되는 방식이며, 대부분 잔금 대출로 갈아타면서 갚습니다.
문제는 이 타이밍입니다. 입주 시점에는 분담금 납부와 이주비 상환이 동시에 몰립니다. 이주할 때 받은 돈으로 몇 년을 생활하다가, 정작 입주할 때는 그 돈을 갚으면서 동시에 분담금까지 내야 하는 이중 부담이 발생합니다. 이 시기의 자금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으면 새 아파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잔금 마련을 위해 새 아파트에 전세나 월세를 놓는 조합원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비 = 갚지 않아도 되는 돈
반대로 이사비는 조합이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돈으로, 대출이 아니라서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금액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조합 정관과 총회 결의로 정해지다 보니 구역마다 편차가 큽니다. 어떤 구역은 정액으로 몇백만 원을 책정하고, 어떤 구역은 가재도구 운반 실비 기준을 적용합니다. 옆 동네 사례를 그대로 우리 구역에 대입하면 안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의할 점은 지급 조건에 이주 기한이 붙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이주를 마쳐야 이사비를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기한을 넘기면 이사비를 못 받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합이 명도소송으로 대응하고, 소송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의 지연손해금까지 청구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버틴 대가가 이사비 몇백만 원 수준이 아니라 그 몇 배에 이르는 경우도 실제로 꽤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거주하지 않고 임대만 주고 있던 소유자는 이사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구역도 있습니다. 본인이 실제로 거주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반드시 해당 구역 정관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세입자의 돈은 완전히 다른 항목입니다
여기서 조합원용 이사비와 세입자에게 나가는 돈을 구분해야 합니다. 세입자에게는 주거이전비와 이사비가 별도로 지급되며, 근거 법령도 산정 방식도 조합원용과 다릅니다.
주거이전비는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도시근로자 월평균 가계지출비에 일정 개월수를 곱해 계산합니다. 협의로 금액을 정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산식으로 나오는 금액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참고로 소유자 본인이 실제로 그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소유자용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무주택 요건 등 조건이 까다로워서 해당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세입자 있는 물건, 순서를 잘못 짜면 발이 묶입니다
임대를 주고 있는 물건이라면 자금 흐름의 순서가 특히 중요합니다. 이주가 끝나려면 먼저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데,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이주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주비 한도가 돌려줘야 할 보증금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여기서 막힙니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못 받았으니 나가지 못하고, 소유자는 이주 기한을 못 맞춰 이사비를 놓치는 동시에 명도소송까지 당하는 이중 곤경에 처합니다.
감정평가액이 낮게 나온 물건, 보증금이 높은 전세를 끼고 있는 물건일수록 이 리스크가 커집니다. 이주 공고가 나오기 전에 미리 계산해보는 게 안전합니다.
미리 확인해둘 세 가지
이주 공고가 붙고 나서야 하나씩 알아보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처분인가가 가까워졌다면 조합 사무실에서 아래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내 물건의 이주비 실수령액: 서류상 한도가 아니라, 기존 채무와 임차보증금을 뺀 실제 손에 들어오는 금액
- 무이자·유이자 구간의 경계와 추가이주비 조건: 총회 의사록에서 확인 가능
- 이사비 지급 기준과 이주 기한: 언제까지 나가야 받을 수 있는지, 임대 물건도 대상인지 여부
특히 세입자가 있는 물건은 보증금 반환 자금을 몇 달 전부터 준비해야 이주 기한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이주비와 이사비 관련 규정은 조합 정관과 총회 결의에 따라 구역마다 다르고, 같은 구역이라도 총회를 거치며 바뀔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용이며, 실제 판단은 해당 조합의 정관, 총회 의사록, 대출 약정서를 직접 확인한 뒤 내리시길 권합니다.
